백석[白石]의 여승(女僧) 작품 해석시 틀리기 쉬운 부분 설명



오늘은 삼일절을 맞아 아직도 반성이 없는 일본의 행태를 보며 백석의 여승이라는 작품이 생각나 이 시에 대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예전 수능 언어영역에서도 수록되었던 작품인데요. 기출문제집에 보면 많이 보셨던 작품일거에요. 

이 작품에서 많은 학생들이 오답이 나왔던 부분이 여승이 머리 다 깎고 절에 들어가는 부분을 '부정적 현실을 포용하려는 여유로운 정신이 엿보인다' 라는 설명을 맞다고 체크했던 부분인데요. 딸도 죽고 남편도 안돌아오고 하는 부정적 현실에서 좌절하거나 슬퍼하고만 있는게 아니라 초탈하고 혹은 초탈하려고 절에 들어간 걸로 보고 부정적 현실을 포용하려는 자세로 본다는 점이었죠.



그럼 이 부분이 왜 틀린지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부정적 현실을 포용하려는 여유로운 정신'이라고 하는데 여인은 가족을 모두 잃은 너무나 슬픈 상태에서 이 슬픔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고자, 이 현실의 번뇌를 잊어 보고자 스님이 된 것입니다. '포용'은 '끌어안고 용서한다'는 의미인데 이렇게 해석하면 작품을 시대상과 연관시켜 봤을 때 민족을 수탈하고 수많은 가족들을 파멸로 몰았던 일제를 용서한다는 의미로도 갈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지요. 더군다나 '서럽고' '눈물 떨어지는' 상황에서 '여유로운 정신'이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백석의 여승 시 시간 순서는 2연 - 3연 - 4연 - 1연의 순서인데 1연을 보면, 여승에게서 가지취의 냄새가 났지만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고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부정적 현실을 포용하려는 여유로운 정신이 엿보인다'가 답이 될 수 없는 근거가 됩니다. 1연의 내용은 여인이 스님이 되고 시간이 지난 후 화자가 다시 그 여인을 만난 장면이죠. 가지취의 냄새가 난다는 것은 '스님은 채식만을 한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이젠 제법 속세에서 벗어나 스님다운 느낌이 난다'는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고 함은, 아직도 그 여승의 얼굴엔 '과거의 가족을 잃은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는 뜻입니다.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것은 불경의 내용이 '속세의 번뇌를 잊거나 극복하기 위한 기록'이라는 것과 여인의 과거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내용 전체가 하나같이 '포용'이나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더 '씁쓸'하거나 '슬픈' 느낌만 줍니다.



백석의 여승 시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1930년대 일제의 극심한 수탈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마저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민족들의 비참한 모습을,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며, '고발'이라는 것은 이 시대상에 관한 것으로 생각하시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백석[白石]의 여승(女僧) 작품 해석시 틀리기 쉬운 부분 설명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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