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유래와 역사 이야기 2편 : 중세영어 (Middle English), 현대영어 (Modern English)


영어의 유래와 역사 이야기 2편 : 중세영어 (Middle English), 현대영어 (Modern English)




영어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1편 고대영어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편에서는 중세영어(Middle English), 현대영어(Modern English)에 대한 내용입니다.


중세영어는 고대영어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훨씬 더 영어스럽게 됩니다. 중세영어의 대표적인 작품이 초서(Chaucer)라는 작가의 Canterbury Tales, 즉 <캔터베리 이야기>인데 첫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WHAN that Aprille with his shoures soote

The droghte of Marche hath perced to the roote,

And bathed every veyne in swich licour,

Of which vertu engendred is the flour;


이것을 현대영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When April with his showers sweet with fruit 
The drought of March has pierced unto the root 
And bathed each vein with liquor that has power 
To generate therein and sire the flower;

 

우리말로는 다음과 같은 뜻이 되는데요.

4월 소나기로 열매에 단맛이 들고, 

3월 가뭄은 뿌리로 뚫고 들어가 

줄기마다 물이 오르고 그 힘으로

그 안에서 꽃이 피어나게 한다.

의미는 물론 모양새부터 현대영어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략 1390년 경에 씌어졌다고 볼 수 있는 이 운문 이야기는 대략 우리나라 용비어천가가 씌어졌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씌어졌습니다.

용비어천가가 오늘날의 우리말과 많이 다르듯이 14세기 말에 씌어진 <캔터베리 이야기>도 현대영어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용비어천가보다는 오히려 더 현대적인 문법에 내용도 훨씬 더 현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중세영어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본격적으로 중세영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어는 AD 1066년에 일어난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을 분수령으로 투박한 발음과 굴절이 심한 전형적인 북방 유럽어 고대영어가 부드러운 남방 유럽어인 불어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거의 새로운 언어로 재탄생 하게 됩니다. 이 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중세영어(Middle English)입니다.


당시 영국은 강력한 군주였던 알프레드(Alfred) 대왕의 뒤를 이어 후손인 ‘고백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가 24년간 왕위에 있다가 1066년 자식이 없이 서거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웨스트 색슨족 출신의 백작인 고드윈(Godwin)의 아들 해럴드(Harold)가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왕의 사촌인 윌리엄(William) 공이 프랑스의 노르망디(Normandy) 지방에 정착하여 꽤 오랜 세월 동안 세력을 키워오고 있었는데,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해럴드의 왕권을 부정하면서 자기가 왕이 되겠다며 그 해 9월 영국을 침공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고 이 침공은 성공하여 성탄절 전날 윌리엄은 영국왕으로 즉위합니다.


문제는 노르만 세력의 맹주인 윌리엄 공은 사고방식이나 문화, 생활방식이 매우 프랑스화되고 언어도 불어를 쓰는, 혈통만 게르만족이지 프랑스(불란서)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노르만(Norman)족 왕 윌리엄은 집권 후 약 5년 동안 영국의 열두 공작 중 단 한 명만 남기고 관료 약 3만 명과 함께 귀족들을 처형시켜 버리고, 당시 영국의 지도층에 남아있는 영국물을 싹 빼버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불어(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노르만 귀족들로 채워 넣어 영국을 프랑스화하여 통치하는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희한하게도 영국에 불어(프랑스어)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 초기의 노르만족 지배계급은 영국 본토문화를 지독히 멸시했으며 철저히 불어를 사용하고 불문학과 프랑스(불란서) 문화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상류계층과 중류계층 사이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상류계급은 영어를 이해하고, 중류계급은 불어(프랑스어)를 배우게 되면서 두 언어권은 큰 교류의 물살을 타게 됩니다.

그 후 왕위계승과 스코틀랜드 지배를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불란서) 사이에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소위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이 벌어지게 되는데 처음에는 영국군이 우세를 보였으나 나중에는 프랑스의 유관순이라 할 수 있는 쟌 다르크(Jeanne d'Arc)의 공헌으로 프랑스가 전쟁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프랑스의 우세로 전쟁을 매듭짓게 됩니다.



하지만 백년전쟁의 결과로 영국 민족에게는 애국심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민족 언어인 영어에 대한 자각운동과 더불어 불어에 대한 배척 등 계몽적인 자주사상이 싹트게 되어, 지금까지 불어를 사용하던 학교와 법정에서 다시 영어를 가르치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15세기 초가 되었는데, 이때의 국왕 헨리(Henry) 5세는 자신의 통치 기간(1413-1422)동안 영어사용을 장려하고 불어의 지배를 끝내면서 영어 역사의 일대 전환기를 이루게 됩니다.

중세영어의 특징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류지배계급은 불어를 사용한 반면 서민들은 영어를 사용했으며, 지식층과 성직자 계층은 라틴어를 사용했습니다.

결국 현대영어의 근간을 이루는 서민들의 영어엔 발음상으로 더 부드러워지고 간결해지는 효과와 함께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되어온 통치계급의 영향으로 crown, state, realm, reign, royal, authority, sovereign, majesty 등 궁중용어들과 religion, sermon, homily, sacrament, baptism, communion, lesson, clergy 등 종교용어를 비롯한 법률, 군사, 학문용어 등에 다량의 불어와 라틴어 단어들이 어휘목록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6세기 셰익스피어가 활동할 때 즈음에는 오늘날의 영어와 그리 다르지 않은 영어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현대영어(Modern English)라고 부릅니다.


현대영어는 정확히 시점을 잡자면, 16세기 AD 1500년경 영국을 휩쓴 문예부흥(Renaissance) 운동 이후에 발달한 영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영국은 첫째, 인쇄술의 발달로 학문이 크게 발달하고 문자의 대중적 보급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인 구텐베르크(Gutenberg)의 활판인쇄술 발명은 서양역사에서 분명한 획을 긋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습니다. ‘42행 성경’ (Forty-two-Line Bible) 출판을 비롯한 그의 활판인쇄술에 의한 지식보급은 서양세계를 일시에 중세에서 근대로 바꿔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시기적으로는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이것이 ‘활판인쇄’라고 하는 보다 복잡한 공학기술로 발전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미미한 영향을 미치는 데 그쳤던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일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캑스턴(Caxton)이라는 사람이 1476년 독일로부터 이 활판인쇄술을 도입하여 왕성하게 책을 찍어내게 되는데요.

무려 2만권에 달하는 대규모의 서적을 발간하게 되면서 영국의 문화판도를 바꿔놓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거기에 덧붙여, 교육의 개념도 바뀌고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국민의 민도를 높이는 대중교육의 꿈도 실현됩니다.


16세기 중엽 셰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에 영국은 이미 국민의 3분의 1이 문자를 해독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민도가 높아지고 국민의식이 선진화되면서 영국은 일찍부터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문화적으로는 예술이 꽃을 피우는 문화적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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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부흥기를 겪으면서 영국 국민은 사회 전반의 개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언어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라틴어의 우수성을 인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것과, 영어의 통일된 철자를 어떻게 제정해야 할 것인지 하는 것, 그리고 새 어휘의 생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언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영국인들은 현대영어를 정립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후 500년 동안 계속되면서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영어의 표준화(standardization), 영어의 순화(refining), 영어의 토착화(fixing)를 향한 줄기찬 발걸음이 내딛어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16세기를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영국은 이미 16세기에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大文豪)를 배출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한 사회적 기반이 닦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16세기 영국은 당시 세계의 첨단 문물이 들어와 역동적인 사회변혁이 일어나던 풍운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가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인데 현재의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는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하는 뜻으로 의도적으로 그 이름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영국은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국민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신대륙인 아메리카주와 인디아, 파키스탄, 네팔,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식민개척으로 또다시 경제적 황금기를 맞이하는 행운의 역사를 써나가게 되었고. 이런 역사가 기반이 되어 영어는 오늘날 자연스럽게 세계어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오늘날 세계 50여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바베이도스 등은 물론이고 과거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인도, 파키스탄,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나미비아, 나이지리아, 케냐 등도 영어가 교육과 행정을 지배하는 공용어로 쓰이고 있고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는 훨씬 더 영어에 잘 노출되어있고 별로 교육을 받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영어를 잘 합니다.


결국에 영어는 세계어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업언어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영어를 가리켜 ‘돈이 되는 언어’라고도 하는데요.


영어는 새로운 시대의 영어인 ‘세계영어(World English)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영어’는 더 이상 미국영어와 영국영어의 표준에만 맞추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어제국주의에 도움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영어’의 시대에 가장 큰 주도권을 쥐게 될 곳은 우리가 속해 있는 아시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지역의 인구분포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인도식 영어, 싱가폴식 영어, 특히 중국식 영어에 영어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영어가 미국인과 영국인이 사용하던 것을 배워야만 했던 영어였다면 ‘세계영어시대’의 영어는 아시아인들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만들어가고 개척해가는 영어가 바로 ‘세계영어’입니다.



지금까지 지켜봐온 영어의 유래와 역사는 변화와 수용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세계영어’ 시대를 맞이한 영어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그 속에 한국인으로서 여러분이 구사하는 ‘한국영어’도 분명 끼어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민족적 자존심을 가지고 영어를 배우고,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이기 위해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여집니다! 


이상으로 영어의 유래와 역사 이야기 2편 : 중세영어 (Middle English), 현대영어 (Modern English)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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