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문학 작품 예시문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의 차이점 및 구분 방법


국어 문학 작품 예시문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의 차이점 및 구분 방법



국어에서 문학 작품을 공부하다 보면 객관적 상관물감정이입 이 두 개념을 흔히 보게 됩니다.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는데요. 이번에 포스팅 내용은 이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 두 개념에 대해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객관적 상관물이 좀 더 넓은 개념입니다. 감정이입에 사용된 대상은 모두 객관적 상관물이지만 객관적 상관물이 모두 감정이입은 아닙니다.



감정이입은 익히 아시는 것처럼 화자의 감정을 다른 대상에 입혀서 그 대상이 화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죠. 즉 화자의 감정과 대상에 입혀진 감정이 같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라마 보면서 많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죠^^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김소월님의 작품인 '초혼'의 일부분 예시문입니다. 


화자가 처한 상황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며, 당연히 화자의 감정은 슬픔이죠. 그러한 감정을 사슴도 슬퍼 우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는 감정이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슴은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실제로 사슴은 지금 시적 상황이 뭔지 알리가 없겠죠. 시적 화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슴을 끌어와서 사슴도 슬픈 것처럼 표현한 겁니다.


객관적 상관물은 전술한 예처럼 감정이입의 방법으로 실현되기도 하지만 정서를 환기하는 매개의 역할로도 실현됩니다.


 감정이입이 아닌 예 로 쓰인 대표적인 케이스로

'황조가'의 꾀꼬리 작품과 이청준님의 소설 작품 '눈길'에 나오는 치자나무를 예시문으로 들 수 있습니다.


유리왕의 황조가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와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위 시에서 꾀꼬리는 '서로 정다운' 상태입니다. 물론 화자인 유리왕은 짝을 잃어 슬픈 상황이지요.

꾀꼬리의 정다운 상태는 유리왕의 처한 상황과 대비되어 '짝을 잃은 슬픈 감정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경우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합니다만 감정이입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화자의 감정과 대상의 감정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청준님의 '눈길'


장지문 밖 마당가에 작은 치자나무 한 그루가 한낮의 땡볕을 견디고 서 있었다.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위 문장이 나올 즈음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상황을 불편해 하며 얼른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 상황들을 언급하고는 위의 문장이 등장하죠. 땡볕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치자나무는 독자로 하여금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환기합니다. 하지만 서술자는 자신의 감정을 '치자나무는 불편해했다, 어색해했다'는 식으로 대상에 감정을 넣어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히 마당의 풍경을 제시만 했을 뿐이지요. 때문에 인물의 감정을 환기하는 객관적 상관물은 될 수 있지만 감정이입은 될 수 없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감정이입은 객관적 상관물의 실현 방법 중 하나라고 보시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포함관계로 얘기한다면 객관적 상관물의 영역 안에 감정이입이 포함됩니다.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에 대한 차이점과 구분 방법에 대해서 이해가 되셨나요?


이상으로 문학 작품 예시문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의 차이점 및 구분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추천정보